엘레아학파(크세노파네스, 파르메니데스, 파르메니데스의 제자 제논은 엘레아학파이다.) 시조로 그리스 엘레아에서 태어났다. 160행의 철학시 '자연에 대하여' 남아있는 철학자다. 크세노파네스의 제자이며 피타고라스학파인 아메이니아스의 제자라고도 전해진다.
 
피타고라스의 영향을 받았으며,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게 영향을 끼쳤다. 파르메니데스는 헤라클레이토스와 정반대로 존재와 존재하지 않는 것, 존재와 사유에 대해 의미 있는 물음을 던진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변화를 강조하였지만 파르메니데스는 변화의 개념은 논리적으로 불가능 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성(理性 실천적 원리에 따라 의지와 행동을 규정하는 능력. 자율적·도덕적 의지에 대한 능력)만이 진리이며 이성과 성격이 다른 감각은 사물의 생겨남, 사라져 없어짐, 사물의 형상ㆍ성질 등이 달라짐을 믿게 하는 것으로 이치적으로 틀린 인식의 근원이 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후에 바다의 표면에는 물결과 파도가 일고 있지만 해저 심해의 밑바닥은 움직이지 않는 보이지 않는 부동의 모습이 있다. 사물의 겉 표면 속에 들어있는 움직이지 않는 부동의 움직이지 않는 것이 사물존재의 근원이라는 생각으로 발전된다.

플라톤 이데아론의 기본 생각이 되며 변하지 않는 것・움직이지 않는 것・보이지 않는 것・오직 하나 뿐인 존재(the one)・존재(being) 존재하지 않음(non-being) 대한 개념을 정리하며, 존재론(存在論), 인식론(認識論 사람이 사물에 대해서 가지는, 그것이 진眞이라고 하는 것을 요구할 있는 개념. 또는 그것을 얻는 과정) 영향을 주게 된다.
 
파르메니데스 사상의 중심은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어둠)’이다. ‘존재하는 것’만이 있으며‘존재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생각으로 ‘존재하는 것’의 성질을 연역(演繹 어떤 명제에서 논리의 절차를 밟아 결론을 이끌어 냄)적인 방법으로 논리를 전개하였다.

존재하는 것은 생겨나지 않기 때문에 없어지지도 않고 늘 있게 되는 것이다. 존재하는 것은 완전하여 결점이 없는 것, 흔들려 움직이지 않는 것, 끝이 없는 것으로, 항상 있는 것이 아니고, 언젠가 생겨날 것도 아니다. 그것은 현재와 함께, 전체와 하나로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지속 되어진 것으로 있기 때문이다.
 
이는 어떤 기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것일까? 어떤 모습으로 어디에 있다가 자라서 점점 커져온 것일까? 등의 물음조차도 허락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때문에 변화를 인정한다면 모순에 빠지고 말게 된다. 모순을 옳거나 확실하다고 여기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우리가 만물의 형상・성질 등이 달라진다는 개념을 이해 없다면 우리는 변화의 사실에 대해서 그 어떠한 주장도 없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변화란 실체(實體) 없는 어이없고 허무한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우리는 세계를 변하지 않는 어떤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생각도 옳은 데가 있어 받아들일 만한 이치이다.

파르메니데스는 감각에 의한 판단보다는 이성에 따른 판단이 이러한 결론을 내린다고 본다. 세계가 변화한다고 믿으며 어이없고 허무한 것을 따라가는 것은 우리에게 감각이 있기 때문에 생기는 실체가 없는 어이없고 허무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실체가 없는 어이없고 허무한 것에 불과한 만물이 변한다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세상 속에 있는 생각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세상 속에 있는 생각에 끌려 다니지 않고 ‘진리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성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파르메니데스는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