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손 섬 북부 최대의 휴양 관광도시로 해발 1300∼1700m의 산중에 형성된 도시로 마닐라에서 북서쪽으로 250km 떨어진 해발고도 1,500m의 고원에 있어 연평균기온이 17.9℃에 지나지 않으므로 20세기 초부터 필리핀에 사는 미국인들의 피서지로서 도시건설이 추진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전에는 여름철에 정부기관이 이곳으로 옮겨져 ‘여름의 수도’라고 불린 적도 있었다. 부근에는 천열수성(淺熱水性) 금은광산(金銀鑛山) 많으며, 그 채굴과 함께 거래의 중심지를 이룬다. 중부 루손 평야와 바기오 고원을 잇는 간선도로가 지나고 동쪽 교외 아그노강() 상류에 있는 수력발전소는 마닐라의 공업화에 몫을 한다.

처음부터 미군의 휴양도시로 개발돼 숲이 조성되어 있으며 특히 소나무가 많으며 기온은 연중 13∼26도로 겨울과 여름이 없는 도시다. 서쪽으로는 자동차로 1시간 30분 거리에 해변이 있으며 동쪽은 고산지대다. 인구는 40만 명으로 대학이 5개 이상이나 되는 교육도시이기도 하다.

한국의 영어 연수생이 많아 현재 교민이 4000여 명에 달한다. 병원 백화점 도시의 웬만한 기반시설은 갖추고 있어 문화생활을 즐기는 데 불편이 없다. 단점은 접근성이 나쁘다는 것이다. 마닐라에서 직행버스로도 7시간이나 걸린다.

바기오의 역사와 문화
1521년 세부(Cebu) 스페인 탐험가 마젤란이 첫발을 내디딘 이후 16세기 후반까지 필리핀 전지역은 차례차례로 스페인 식민지가 되었다. 1896년 필리핀 독립전쟁이 발발하게 되었는데 호시탐탐 태평양지역에서 세력확장을 노리던 미국과 스페인 사이에 전쟁이 일어난다. 1898년 미국은 필리핀 전역을 점령하게 되었고 당시 총독 윌리엄 하워드 타프트와 수뇌부는 해발고도 1500미터의 서늘한 고산지대에 바기오 건설을 제안하게 된다. 워싱턴 DC의 설계사 다니엘 번함(Daniel Burnham) 데려와 도시의 여타지역을 설계하게 했는데 그것들 하나가 지금도 도시의 상징적인 장소인 번함 공원이다. 오늘날 바기오는 필리핀의 여름수도로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휴양도시가 되었다. 1990년에는 대규모 지진이 필리핀 전지역을 강타했다. 바기오도 예외는 아니었으며 바기오 하얏트 호텔도 붕괴되었다.수많은 가옥들도 파괴되어 피난민들이 번함공원 옆에 있는 축구장에 천막을 치고 생활하였고, 바기오와 마닐라를 연결하는 주요도로들도 끊어져 생필품 공급도 원활하지 않았으며 도시기능이 회복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고 한다.아직도 바기오에는 몇 개의 백화점을 제외하고는 고층건물이 별로 없다. 수백년 동안에 걸친 스페인과 미국의 지배는 사회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쳤다.첫째로 스페인계통 백인과의 혼혈이 성행하여 필리핀인의 카테고리를 하나로 규정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연애프로에 등장하는 사람들 중피부가 하얗고 머리색이 금발인 사람도 많이 나온다. 둘째로 집에서 아침식사를 하기보다는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로 식사를 해결하고, 일요일에는 성당에 가서 예배를 본다. 셋째로 영어가 공용어가 되었다. 외국어에 가까울 만큼 사투리가 심해서 영어가 학교와 행정에서 쓰이는 공식언어가 되었다.

이곳 사람들의 영어구사능력의 편차는 천차만별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영자신문을 읽거나 의사소통을 있는 정도에 그치고 대학교수나 대학생과 같은 소수만이 수준있는 영어를 구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