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4월 25일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서 ‘구국운동’(MFA) 소속 청년장교들이 반란을 일으켜 수십 년 동안의 파시즘 체제를 무너뜨렸다.
주도자들이 대위급 장교였던 터라 흔히 ‘대위들의 혁명’이라고 부르는 이 무혈혁명은 1974년 4월 25일 포르투갈 라디오방송국에서는 금지곡이었던 파두뮤지션 주제 아폰수의 노래가 흘러나왔고, 이것을 신호로 청년장교단은 수도 리스본에 진입한다.
시민들은 혁명군에게 환영의 표시로 카네이션을 던져주었는데, 이것이 무혈,명예혁명인 '카네이션 혁명'이라고도 불린다.
포르투갈은 스페인과 함께 1930년대의 파시즘 체제를 1970년대까지 이어온유럽의 두 ‘이단아’에 속했다. 스페인에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있었다면, 포르투갈에는 안토니오 데 올리베이라 살라자르가 있었다.
경제학 교수 출신의 살라자르는 1932년에 총리가 된 뒤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를 본떠 일당 독재와 비밀 경찰에 기반을 둔 공화제적 조합국가 체제를 포르투갈에 확립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연합국에 우호적인’ 중립을 지켰는데, 이것은 스페인 내전 때 우애를 나눈 이웃 나라 독재자 프랑코가 그 시절 ‘추축국에 우호적인’ 중립을 지킨 것과 비교된다. 그러나 이 두 파시스트는종전 뒤 모두 미국의 공산주의 봉쇄 정책의 우산 아래서 자신들의 체제를유지해 나갔다.
1969년에 살라자르가 병으로 은퇴하고 이듬해 사망한 뒤에도 포르투갈은여전히 독재체제와 식민주의를 견지해 ‘살라자르 없는 살라자르 체제’라고 불렸으며 이 무혈 혁명은 ‘세계 최후의 식민지 제국’으로 불렸던 그 살라자르 체제에 균열을 내기 시작한 사건이었다.
이 혁명의 특징은그 주체가 군부와 좌익 세력의 연합이라는 데 있었다. 포르투갈은 그 뒤군부와 정치권 내부의 좌우 갈등에 기인한 우여곡절 속에서도 민주주의를진척시키고 해외 식민지를 독립시키며 유럽의 정상(正常) 국가로 돌아왔다.